참 고맙고도 아련한 풍경이다. 이른 아침, 대학 식당 창가에 앉은 학생들이 천 원을 내고 따뜻한 국과 밥을 받아 든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 사이로 졸린 눈을 비비며 밥을 떠넣는 모습은, 어쩐지 짠하고도 아름답다. 마치 사회가 마지막으로 청춘에게 내미는 손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따뜻함 속에서 묘한 씁쓸함이 피어난다. 천 원짜리 밥 한 끼가 ‘혜택’이 되고 ‘이슈’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 왜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가장 기본적인 안부조차 망설여야 하는 걸까. 먹는 문제는 곧 삶의 문제다. 먹을 수 있어야 공부도 하고 꿈도 꾼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청년들이 끼니 걱정을 하는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때 "공부 열심히 하면 뭐든 될 수 있다"던 기성세대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천원의 아침밥은 따뜻하지만, 그 이유가 슬프다. 청년들이 밥 한 끼도 부담스러워하는 사회. 집세와 등록금, 알바와 과제 사이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20대가, 천 원짜리 밥 한 끼에 눈물을 머금는다. 그렇게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붙잡아 주고 있는 듯하다.
기성세대는 반성해야 한다. 지금 청년들이 겪는 결핍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집 한 칸 마련조차 하늘의 별따기요, 안정된 일자리는 꿈같은 이야기. 그런 세상에서 청춘은 왜 이토록 조용히 견디고 있는가. "요즘 애들 안 힘들어 보여"라며 웃는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이 얼마나 조용히 무너지는지 보았는가. 대충 때운 식사, 지워진 꿈, 무표정한 얼굴… 청춘의 소란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배고픔과 피로가 서린 고요한 무게만이 그들의 하루를 누르고 있다.
천원의 아침밥은 응급처치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청년들이 왜 이렇게까지 허기져야만 하는가에 있다. 천 원이 고마운 사회는 동시에 슬픈 사회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바꿔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밥상이 더 이상 ‘혜택’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되도록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생각한다. ‘미안하다, 청춘이여.’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이 밥상 위에 다시 희망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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